칸트의 산책
칸트는 아침 5시에 일어나 차 한 잔과 담배 한 개비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 7~11시에 강의를 하거나 강의를 준비한 뒤 오후 1시까지 글을 썼다. 오후 1~3시에 점심 먹으면서 사람 만나고, 30분 뒤에 한 시간 강변을 산책했고 친구 만나 7시까지 대화를 즐겼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밤 10시면 잠이 들었다. 이 '걸어 다니는 시계' 칸트를 보고 이웃 주부들은 시계를 맞췄고, 그래서 그의 별명이 '쾨니히스베르크의 시계'(Königsberg clock)다.
철학과 선배인 칸트는 산책을 즐겼지만, 나는 산책로 주변에 꽃 심는 취미가 있다. 우리 아파트 옆에 작은 냇물이 있고, 그 옆에 산책로가 있다. 금년 봄에 산책로 바위틈에 비비추와 노랑 붓꽃을 심었다. 붓꽃은 일본 궁성의 호수에 아름답게 피던 꽃이다. 호숫가 붓꽃은 남모르는 품위가 있고 황실의 안목을 보여준다. 비비추는 생명력이 강해 바위틈에서 잘 자란다. 재작년에는 자작나무 묘목 40그루와 무궁화 20그루를 심었다가 실패했다. 숲의 귀족 자작나무 산책길, 하와이의 명물 하이비스커스 사촌 무궁화 산책길을 만들려다가 실패했다. 구청 인부들이 풀 벤다고 묘목을 다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속이 상해 한 해 쉬었다가 올해 다시 비비추로 시작했더니 즐거운 일이 생겼다.
비 온 후 나갔더니, 누군가가 산책로에 산나리 두포기를 심어놓고 갔다. 동조하는 분이 생긴 것이다. 바위틈에 삽목한 덩굴장미도 비 맞고 새잎 돋았는데 그중 하나가 꽃봉오릴 내밀었다. 아파트 후문에 심은 코스모스 씨앗 새싹이 나오자 누가 근처 잡초를 말끔히 뽑아놓고 갔다. 이것만 해도 남모를 기쁨이다. 그런데 어제는 자전거 타고 가던 어린 소녀가 옆에 오더니,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길래, '으응!' 하고 대답했더니, '꽃 많이 심어주세요' 깜찍한 당부를 하고 간다. 이런 게 행복 아닌가. 그래 요즘 八旬 노인이 날만 밝으면 산책로에 나간다. 김창현(金員校) [프로필] 수필가. 前 청다문학회 회장 남강문학회 수석부회장 작은 열쇠가 큰 문을 연다(아남그룹 창업주 자서전) 나의 인생 여정(장재걸 선생 자서전) 재미있는 고전여행(김영사) 한잎 조각배에 실은 것은(소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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